지난주 창5장의 말씀을 통해 첫인류 아담의 계보는 죽음의 계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낳고, 살고, 죽었더라’로 끝나고 결국 인생은 죽음의 운명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창5장에 에녹의 죽음을 맛보지 않은 승천 이야기가 있어서 그 시대의 희망이고 복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녹 이후의 사람들은 다시 죽기 시작했고, 그 이후 죽음 이후의 부활을 실제로 보여주고 실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주 예수님이 죽은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금까지 죽음으로 운명지어진 인류의 역사에 생명의 역사를 만드는 전쟁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 나치의 승승장구에 쐐기를 박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처럼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운명을 창조하는 하늘의 침공 전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전복시키는 날이었고, 사망과 죽음이 지배하는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창조한 날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산다고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죽음의 상징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새생명의 시작과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더 이상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고, 더 이상 사망의 위협에 겁먹지 않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성도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에,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고 이후로도 계속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육신의 사망이 있은 후에도 또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탄에게 치명적 패배를 안겨준 전쟁선포이자 승리의 시작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사망하지 않을 것이고, 마귀에게 패하지도 않고 이기고 또 이길 것입니다. 이제 성도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해 달리는 삶입니다. 성도의 하루하루는 날마다 새로운 창조의 시간입니다. 아무리 동장군이 강해도 봄처녀를 이길 수 없듯이, 죽음이 아무리 강해도 예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통하여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시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어 하루하루 부활의 새생명, 새창조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