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열왕기상 16:29–17:7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들은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두 길로 평가받습니다.
다윗의 길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길이며,
여로보암의 길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등지는 길입니다.
남유다 왕들 중 일부는 다윗의 길을 따랐지만,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중 아합은 가장 큰 악을 행하며,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하나님의 분노를 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쾌락을 통해 풍요를 얻는 거짓 종교였습니다.
아합은 여리고성을 재건하며 여호수아 시대의 저주를 무시했고,
결국 건축자 히엘은 아들들을 잃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 없는 삶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결국 허무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경고입니다.
시편 127편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헛되다”고 말씀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기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버리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름도 생소한 디셉 땅에서 엘리야라는 선지자를 부르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엘리야는 신앙고백대로 사는 자였습니다.
그는 아합 앞에서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라고 선포하며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의 선언은 신명기 11장의 말씀에 근거한 것으로, 비와 이슬을 닫는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선포 후에 놀라운 부흥 대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냇가로 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실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사람의 계산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시고, 마른 시냇가에서 보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그분이 책임지고 공급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이 믿음의 길은 엘리야만 걸은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재판관’이라는 이름의 고백대로 신실하게 살며 사자굴에서도 보호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리라’는 이름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사셨고,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키시고 높이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처럼 신앙을 고백하고, 그 고백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때마다 도우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기도제목
–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고백하며 살게 하소서.
– 신앙의 이름처럼 진실하게 고백하며 그 길을 걷게 하소서.
–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를 믿고, 모든 상황 속에 순종하게 하소서.